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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자신만의 표식을 남기자 - 장서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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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디오스(adios) 2008. 7. 5.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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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표란 무엇인가?


*본 글은 남궁산 선생님의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http://www.namkungsan.co.kr

사람들은 유사 이래 자신의 소유한 특별한 물건등에 자신만의 고유한 표식을 하면서 그것에 대한 애정의 표시나,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소유물을 보호했다. 그것이 다름이 아닌 책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고, 단순한 소모품일 수 없는 책의 경우에는 더욱 적극적이었다.

우리는 자신이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책의 겉장이나 뒷장, 혹은 세로 면에 책을 구입한 날짜와 함께 자신의 이름이나 도장, 그 책과 관련된 적은 분량의 글 등을 남기곤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귀한 책에 소유와 애정의 표시를 남기고자 하는 것이 모든 애서가의 욕심이었다. ‘장서표(藏書票)’는 이러한 욕구와 실용의 차원에서 생겨난  ‘책 소유의 표식’으로서 시작했지만 그 고유의 예술성 때문에 책의 역사 만큼이나 오랜기간 동안 애서가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장서표는 이러한 책의 소유를 표식하는 도장이 보다 더 예술적으로 가공되어 독립된 예술의 장르이다. 그것은 장서자의 일종의 표시이거나 책의 장식에 쓰이는데 책의 표지나 뒷면 또는 안겉장에 붙인다. 그래서 그것은 아름다움과 실용의 목적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문자와 그림이 조화롭게 결합된 것이 장서표의 중요한 예술적 특징인데 주로 ‘판화’로 제작되며 내용과 형식이 각기 특색을 갖추고 있다.


장서표의 역사

서양의 장서표

서양의 장서표는 15세기 후반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의 발명 이후 평소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던 귀족과 승려계급에게 애호되었다. 이 무렵, 책은 귀중품으로 취급되었는데 책을 빌려주는 경우,그 것이 누구의 책인가를 표시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귀족들은 자신의 휘장을 판화로 만들어 자신의 책에 붙였다. 이것이 서양 장서표의 시작이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의 장서표는 독일의 신부인 한스 이글러(Hans Igier)의 것인데 ‘고슴도치’를 소재로 삼고 위쪽에 짧은 문장을 써 놓았다. 그 내용은“고슴도치가 당신에게 키스할지도…”라는 것으로 이는 곧 다른 사람이 책을 훔쳐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경고이다. 자신의 이름 가운데 'Igier’가 ‘Igei(고슴도치)’와 유사한 점을 교묘하고도 적절하게 이용하였다.(도판1)

또 하나는 1470년의 작품으로 방패를 든 천사를 그렸으며 그 방패에는 소 한 마리를그렸는데, 그것은 독일의 귀족인 ‘브란덴부르크’가의 휘장이었다.  그 밑 부분엔 ‘브란덴부르크 가가 북하임 수도원에 기증한 책’이라는 글귀가 라틴어로 쓰여 있다.(도판2)

장서표는 독일의 르네상스때 화가이자 판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나 크라나흐 등에 의해서 제작되어 졌고 시민계급의 성장과 인쇄술의 발달 로 출판 사업이 활발해진 19세기에 이르러서 서유럽과 동유럽, 미국과 일본 등지로 보급되기 시작했다.유럽의 대문호인 모파상, 빅톨 위고,플로베르와 미국의 작가 잭 런던 등이 이런 장서표를 애용하였다고 한다.


동양의 장서인과 장서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서는 서책에 직접 찍는 장서인을 사용하였다. 일반적으로는 문자로만 이루어져 있지만  그림을 이용한 초형인(肖形印)에서 유사한 점을 발견 할 수 있다. 이는 동양의 장서인이 더 연조 깊은 장서표의 시조로 이 야기 될 수도 있겠다.

중국에서는 근대혁명기 초기에 중국의 대문호 노신의 신흥 목판화 운동에 동참한이화,당영위 등의 판화가들이 판화로된 장서표를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모든 판화가가 즐겨 장서표를 작업하여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개최하고, 출판과 관련하여 각종 활동을 펴는 등 적지 않은 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1900년 봄, 우끼요에를 배우러 온 빈의 분리파 화가 올릭에 의하여 석판화와 장서표가 소개되어 판화가 무나카다와 그 후 많은 판화가들이 작업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후기부터 장서인이 쓰였다고 추정하지만 조선 초기에 와서야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장서인은 13세기 고려 고종 때 ‘수기(守其)’스님이 “대방 광불화엄경(주본) 권6”에 찍어 놓은 ‘해동사문 수기장본(海東沙 門 守其藏本)’이라고 하며, 조선 초기 세종조에 활약한 남지나 정인지 등이 인장을 소장본에 찍어 사용 했다고 한다. 조선후기의 대사상가인 정약용이나 서화가이기도한 추사 김정희는 낙관용과는 별도의 장서인을 가지고 있었다.

개화후 식민시대를 거치며 전통판화의 맥이 끊겨졌고 일본에 유학을 했던 서양화가 최영림 등에 의하여 근대 판화가 소개되었지만 웬일인지 장서표는 소개되지 않았 거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1991년 중국 조선족 판화가 이수산이 가지고 온 장서표를 필자가 발견하여 소개하고 제작하기 시작했다.


장서표의 형식과 내용

장서표는 주로 판화(版畵)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장서표가 복수로 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목판, 석판, 동판, 세리그라픽 등 의 판화기법과 현대적 옵셋인쇄나 개인용 컴퓨터의 프린팅 등 복수의 복제가 가능하기만 하면 어느 매체라도 무방하지만,판화로 제작된 장서표가 예술장서표로 더 애용되고 있으며 예술의 한 장르로서 정착되었다. 장서표의 제작은 일반 판화와 큰 차이는 없지만 크기나 격식상 지켜야 할 몇가지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장서표의 제재가 되는 것으로는 인물,물고기,새,곤충,동물,꽃,풍경,각 종의 이미지를 사용하며, 역사적인 고사나 신화,전설,민담 그리고 현대생활에 이르 기까지 다양하다. 표현은 그 내용에 따라 구상과 추상의 방법을 자유롭게 운용하며 모양도 방형,정방형,원형,삼각형 등 제한이 없다. 크기는 작은 것이 우표나 공중전화카드, 담배갑만한 것에서부터 큰 것은 엽서 크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길이가 5센티미터에서 10센티미터를 넘지 않는다.
장서표에는 라틴어 ‘EXLIBRIS’라는 국제 공용의 표식이 삽입되는데 쓰는 사람에 따라 EX와 LIBRIS 사이에 '-'을 삽입한다. EX는 영어의 'from’, LIBRIS는 ‘books, library’로 ‘~애서’ ‘~장서’의 뜻이며 영어권에서는 ‘Book Plate’라고도 쓴다.

장서가 자신의 이름을 써넣는 것도 장서표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예를 들면 누구누구 장서, 애서, 소장, 책사랑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주소나 서재명, 제작이나 소장 연대를 쓰기도 하고, 책의 내용이나 그와 관련된 시,격언,경구들을 적어 장서표의 의의를 더한다.


장서표의 제작과 소통

장서표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제작하여 사용할 수 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 는 고무 지우개나 책상 깔개 등의 고무판에 조각칼,면도칼 등을 사용하여 제작하거 나 개인용 컴퓨터의 응용,일반복사기를 이용해서도 훌륭한 장서표를 만들 수 있다.복수로 제작되기 때문에 가까운 동료,친지들과 서로 교환하여 감상 하는 즐거움도 가질 수 있다.

장서가 스스로 장서표를 제작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스러움은 두 말할 나위가없으나 그것이 여의치 않거나, 보다 고도의 미감을 즐기기위해선 전문 판화작가에게 제작을 의뢰하면 된다. 이 경우 작가는 의뢰자의 사상이나 세계관,직업, 취미 등을 두루 살피고 책의 종류나 장서한 연도,장소등을 포함해서 장서표를 구상하고 제작한다. 판화 장서표는 오리지널 판화이기도 하므로 예술품으로 감상가치를 지니며 소장의 가치가 있다.

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미리 인쇄된 기성품 장서표를 구하는 것 도 한가지 방편이 될 것이다. 기성품 장서표는 장서표를 사용할 사람의 이름이 표기 되지 않은채로 통용되는데,일정한 여백에 장서 주인의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곁들여서 실용적으로 사용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국내에서는 미리 인쇄된 장서표를구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유럽이나 미국,홍콩,일본 등지에서는 서점에서 저렴한 가격의 기성 품 장서표를 판매하거나 무료로 나누어 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서점에서 장서표를 서비스하거나, 출판사의 경우 자신이 발행하는 책의 내용에 맞게 제작해서 책에 끼 워 준다면 책에 대한 관심을 더욱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 된다.


 
장서표의 독립성
장서표는 책을 떠나서는 그 존재의 의의를 잃고 말지만, 최근에는 책에 붙여지는 의미있는 장식물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독립된 예술의 한 갈래로 발전하였다. 예를 들면 전시가 목적이 되거나, 수장 또는 수집되거나, 교환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유럽의 모든 나라와 가까운 일본, 중국에는 장서표 애호가와 작가들에 의해 장서표협회가 만들어져 있으며 얼마 전에는 일본,이탈리아, 대만 등지에서 대단위 세계장서표 교류전을 열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영국의 대형 박물관에는 이 미 20만 점의 장서표가 수장되어 있다고 한다.




장서표의 국내 전시 현황
 
국내에서는 몇몇 판화가들과 그 주변의 사람에 의해서 기존의 장서인과는 다른 장 서표가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1993년 11월에 ‘한국애서가클럽’이 주최하여 <영풍문고이벤트홀>에서 30 여명의 국내 작가의 작품과 일본의 장서표협회에서 소장하고있던 각 나라의 장서표를 모아<세계의 장서표>전시회가 열렸다. 또 미도파 갤러리 주최로 <장서표와 작은판화전>이라는 전시가 다음 해에 있었고 1995년 봄, 인사동에 있는 현화랑에서 <장서표 개인전>이 열렸고 그해 제1회 <판화미술제>에 초대 출품 했다.  그 후 2001년 인사동의 관훈미술관에서 열린 <장서표전>에 80여명의 판화가들이 장서표를 출품하였다. 그리고 2002년 봄, 인사동의 동산방화랑에서 필자가 두 번째 <남궁산 장서표 개인전>을 개최했다. 2002년 몇몇의 판화가들에 의해<장서표협회>가 만들어졌다.

*본 글은 남궁산 선생님의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http://www.namkungsan.co.kr



*남궁산 선생님 관련 기사
[책과 삶]작은 판화속의 우정
작가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 예리하고 익살스럽게 양각
장서표’에 새겨넣은 곰삭은 인상

*윤광준의 생활명품을 읽다 발견한 장서표 이야기...  장서표를 검색하다 발견한 남궁산 선생님의 홈페이지.
목판화를 통해 우리 전통 문화를 티셔츠, 장서표, 인쇄매체 등에 찍어 알리겠다는 그 의지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아름다운 장서표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좁은 방 가득한 책들에 나만의 표식을 남길 날을 기대해 본다.

“소중한 책에 자신의 장서표를 찍는 일은 지적포만감을 확인하는 우회적 표현, 자신이 읽은 책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책이 미술적 가치를 가지는 것”   - 윤광준의 생활명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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