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반란이다. 그냥 이 책을 읽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건 매번 읽히기만 기다리던 책이 저지른 반란이라고.
언제나 책장 한켠에 꼽혀 있어 소유자가 읽고 싶을 때 빠져나와 누군가의 손에 의해 펼쳐지고 읽혀지는 책이 반기를 들었다. 스스로 그 마력을 뽐내며 저절로 손이 책으로 향하게 끔 하며 책을 펼치는 순간 절대 그 책에서 눈길을때지 못하게 만든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다독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 책을 항상 끼고 사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글이라 생각했다. 책속에 나오는 독서가들 중에는 일부는 책 모으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책이야 말로 삶의 전부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책을 애지중지 하며 책에 대한 소유욕에 집착하는 사람, 세상의 그 희귀한 책들만 모으는 수집가, 집안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곳곳에 쌓여있는 책을 보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살포시 비꼬며 쳐다본다. 물론 그 시선은 책의 시선이다.
어느날 한 사람의 죽음 이후 발견한 책 한권. 호기심에 손을 내밀었다가 그 책의 마력에 사로잡히고 만 한 남자. 그 남자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자의 손에서 책이 벗어나는게 싫었던 걸까? 어느새 책은 남자를 잡아먹고 남자는 그 책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때 부터 이 책이 한 사람 한사람의 손을 옮겨가며 겪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야기 속에는 정말 재미없는 책을 만났을 때 우리가 어떤행동을 하는지, 정말 재미있고 달콤한 책을 만났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비교해서 볼 수 있었다.
"나쁜 책이란 전혀 마음에 들지 않고, 동시에 마음에 들지 않을 만한 무언가를 지닌 책을 말한다." - 프리드리히 뤼커르트 (p.83)
참 묘한 책이다. 책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좋은 책과 나쁜 책에 대한 느낌까지 한 애독가가 책이 되면서 펼쳐지는 책의 시선은 여러가지 질문을 던져준다. 저렇게 책장 속 가득 꼽혀 있는 책이 올바른 책의 기능을 하고 있는 걸까? 이책 뭐 이래! 하며 툭 집어 던져둔 책은 다시는 쳐다도 안보는 폐품이 되어버리는 건 책에 대한 모독은 아닐까? 같은 책이지만 어떤이에겐 관심의 대상이고 어떤 사람에겐 관심밖의 물건일 뿐이라는게 느껴졌다.
책 속에 삽입된 삽화들이 내용과 관련해 너무 멋있다. 독특하면서도 책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노스님 젊은 스님들에게 화두를 던져주듯 책을 다 읽고 나면 "나에게 있어 책이란 무엇인가?" 란 화두를 앞에두고 고민해 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책에 미친 남자' 비블리의 변신 과정을 좇으며 시작된다. 소년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유난히 집착하던 그는 어느 날, 변하지 않는 그 이야기의 원천이 바로 책과 글씨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책을 사랑하게 된다. 책의 냄새까지도 들이마시며 좋아하는 전형적인 책벌레가 된 것이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장서를 보여주는 일을 생의 기쁨으로 살던 그는 어느 날 헌책방 거리에서 한 권의 책과 맞닥뜨린다. <그 책>이라는 제목의 책. 생애 처음으로 도둑질을 감행해 '그 책'을 손에 넣은 그는 이내 책을 미워하게 되었고 다른 모든 책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방에 틀어박혔다가 결국 <그 책>이 되고 만다.
'책이 되어버린 남자' 비블리의 기묘하고도 짧은 생애에는 책을 사랑하거나 증오하는, 혹은 아예 책을 잊고 사는 우리의 자화상이 담겨 있다. - 알라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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