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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처절한 자신의 삶과 싸움.

책과 함께하는 여행 <Book>/책 리뷰

by 아디오스(adios) 2010. 1. 17.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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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책 디자인은 해당출판사에 저작권이있습니다.



 ‘한 젊은 여자가 중환자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흐느끼는 모습이 보인다. 멍한 시선과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손을 보아 너무나 놀란 가슴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모습이다. 며칠이 지나 그 여자가 다시 보인다. 독한 눈빛에서 이전의 두려움에 떨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인가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두 주먹이 불끈 쥐어져 있다. 그러다 고개를 내젓는 모습이 불행한 생각, 불길한 생각이 자꾸만 드는 자신을 질책하며 그 생각들을 애써 떨쳐 버리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뒷모습이 홀가분해 보였다.


 20여일이 지난 어느 날. 마주친 그녀의 모습은 2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삶의 의미를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삶의 희망도, 즐거움도 모르는 감정이 없는 인형과 같았다. 그동안 보아왔던 당당함과 끈질긴 노력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책을 읽으며 남편이 쓰러지고 깨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앞부분을 읽고 저자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아마 저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절한 삶의 싸움이 너무나 솔직하게 적혀있다. 장기 환자를 둔 가족의 자존심과 고통,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은혜를 갚지 못한 죄송스러운 마음, 내가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한 게 후회되는 게 아니라 자존심과 내 어머니께 아무것도 못해준 딸이라는 멍에에 가슴아파하는 저자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온다.


 ‘아프다. 가슴이 미어진다’ 유독 큰 사고가 많아 병원에 자주 입원해 대 수술을 받으셔야 했던 아버지. 언제나 병원에서 병 수발을 들어야 했던 어머니. 낮에는 들녘에서 농사를, 밤에는 병원에서 새우잠을 자며 자신은 챙기지 않고 병수발을 들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심장이 좋지 않은데도 가족과 아버지와 농사일에 신경 쓰며 단 한 번도 힘들다 말하지 않으셨던 어머니. 아마 어머니도 신달자 작가의 마음처럼 지치고 힘겨웠을 것이리라. 오랫동안 뵙지 못한 어머니의 얼굴이 책속 저자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나는 고개를 오르고 다시 오르고, 맨발로도 오르고 가시신발을 신고도 오르고, 넘어지고 깨어지고 터지고 부서지고도 다시 일어나야만 했다” (p.140)

 얼마나 처절했고 얼마나 간절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신불수가 된 남편을 오랜 기간 동안 수발해야 하는 힘겨움. 아이들을 키워야 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을 씻기고 먹이고, 약 달이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증오하면서도 마음에서부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챙겨주는 작가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왔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남편에게 바친 그녀의 인생이 안타까웠다.


 인생을 포기한 남편, 남편의 자존심과 존재감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아내. 아내의 노력에도 자살을 시도한 남편 그리고 정신 이상과 폭행, 정신병원입원 등 아내를 절망과 고통으로 빠뜨린 남편의 모습. 그리고 장기 환자를 둔 가족에게 찾아온 금전적 고통.


 “내 글 한 줄이 10원짜리 동전 하나도 되지 못한 부끄러운 나의 문학
”이라는 글에서처럼 인정받지 못하고 쓸모없이 느껴지는 자신의 글에 가슴아파하는 저자의 마음이 묻어난다.


 “내가서면 남편도 설 것이다. 내가서면 아이들도 서게 될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시작해야 했으며 그대로 무너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손에 불끈 힘을 주었고 그 현실을 순응하였다.”

장애 남편,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정신 이상이 있는 남편을 버리고 도망간 아내들은 많다. 하지만 작가는 절대 무너지지 않았고 자신을 속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남편의 고통을 이해했고 고쳐 주리라 마음먹었다.
 
“그 가슴 썩는 냄새를 나는 안다…….(중략).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쾅하고 쏴버리고 싶은 내면의 용광로 같은 광기를 안다.... 다 안다. 다 안다” 남편의 고통을 그녀는 이해했고 자신이 삶에 고통과 절망만 안겨준 남편이 마지막 세상을 떠나갈 때 마음속에서 그동안 제발 빨리 죽어 달라 외치던 목소리가 아닌 제발 곁에 있어 달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고통과 원망의 순간에서 죽음이라는 강을 넘는 순간 모든 원망은 산화되어 아프기 전 남편과의 추억과 좋은 기억들만을 간직한 채 외로움의 그늘에 혼자 남지 않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인 것이다.


 책을 읽으며 한 여인이 겪은 고통의 시간에 같이 가슴아파했고, 잃어버린 삶의 시간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두 번째 농사(인생)를 준비한다는데. 두 번째 농사만큼은 외롭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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